“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7장11-12절)
7:11 「あなたの神、主に一つのしるしを求めよ、陰府のように深い所に、あるいは天のように高い所に求めよ」。12 しかしアハズは言った、「わたしはそれを求めて、主を試みることをいたしません」。
오늘 본문은 주일 아침 말씀 가운데 나누도록 합니다.
본문 11-12절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 왕에게 여호와께 징조를 구하라고 했지만, 그는 구하지 않고 시험하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말씀합니다. 왜 아하스가 그렇게 말했는지… 실은 앗수르를 의지하여 아람과 북이스라엘 동맹군을 치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도 이미 마음으로 결정한 후에는 말씀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것을 말씀을 통해 보게 됩니다. 따라서 말씀의 인도를 받고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받기 전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예전에 묵상하던 “보니시 참 좋았더라” 라고 하는 묵상지엔, 가장 먼저 “비움”이란 묵상 순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성도들의 마음 자세는 먼저 비우고 듣고자 하는 순종의 말씀이 참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루의 시작을 말씀으로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구요.
어떤 자세로 말씀을 읽고 계십니까? 이미 결정한 후 참고하기 위해서인지? 마음을 비우고 주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인지? 오늘 말씀 안에 아하스 왕의 행보를 보면서 깊이 내 자신을 돌아 보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今日は、昨日の黙想本文から見たいと思います。
本文7章11-12節を見ると、南ユダ王国のアハズ王は、イザヤが「あなたの神、主に一つのしるしを求めよ」と勧めますが、かれアハズ王は「主を試みる事を致しません」と答えます。ある面では、アハズ王の信仰深い姿に見えますが、実はそうではありません。まず、主に求める事は、主なる神様を「試みる」事にはなりません。むしろ主なる神様は何度も「わたしに求めよ」とおっしゃっておられるのです。2次元の見方しかできない私たちの人間がより、全能の神様について知る機会となり、主のみ旨が分かる幸いなチャンスであるのが、「主に求める時」だからです。
では、アハズ王の姿を通して悟る事は何でしょうか?多くの信仰ある人々が、実に自分の心で自ら良しと思う事を決めてからは、造り主のみ言葉が耳に入る事は難しいという事です。私たちは主に導かれる時こそ、本当の安全と祝福を頂けるのです。そのためには、自分の思いと心、いわゆるすべての計画を白紙にして、主に委ね聴くように、祈る事が大事なのです。特に、主のみ言葉を黙想する時には、より耳を傾けるために、静まって主のみ言葉を受け入れようと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皆さんは、どのような姿勢で、主のみ言葉を黙想し、受けていますか?すでに「このようにしよう」という決めた思いを確かなものとするための参考ですか?もしくは、「主よ、悟らせて下さい。私が聞きます。」という従順な心を持ってですか?今日のアハズ王の行動を見ながら、自分を振り返って見る時としましょう。主は確かな導きを持って、主の声を聞かせて下さいます。
サムエル記上15章
22 サムエルは言った、/「主はそのみ言葉に聞き従う事を喜ばれるように、/燔祭や犠牲(礼拝や捧げ持)を喜ばれるであろうか。見よ、従うことは犠牲にまさり、/聞くことは雄羊の脂肪にまさる。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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