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18절).
18 一同はヨセフの家に連れて行かれたので、怖くなって言った。「われわれが連れて来られたのは、この前のとき、われわれの袋に戻されていた、あの銀のせいだ。われわれを陥れて襲い、奴隷としてろばとともに捕らえるためだ。」
본문은 요셉이 형제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자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42:26-28,35,43:12) 그들을 억류하고 노예로 삼고 나귀를 빼앗을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들을 자기의 집으로 인도한 것은 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요셉이 그들을 그의 집으로 인도한 것은 개인적으로 가족 상봉을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두려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이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코로나19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처럼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에게 장래에 희망을 주는 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죠. 왜 코로나19가 장래에 희망을 주는 것이 될까요? 코로나19는 마지막 때의 끝과 환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고, 때가 되어 간다는 것은 곧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때를 분별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오늘도 믿음의 인내로 힘있게 주일을 주비하시며 사시는 모든 주의 자녀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本文は、ヨセフが兄弟たちをヨセフの家に連れて行かれるのを見て、前の事である(42:26-28,35,43:12)「袋に戻されていた、あの銀のせいだ」と思い、怖くなり、恐れていたと言います。ところがヨセフが兄弟たちを自分の家に導いたのは彼らが思っていた事と背反対の理由でした。
ヨセフが彼らを自分の家へ導いたのは16節に書いてある様に「この人々を家に連れて行き、獣をほふって、したくするように。この人々は昼、わたしと一緒に食事をします」、すなわち個人的な場所で自分の正体を明かし、別れていた家族の再会場を持つためでした。だから、怖い事ではなく嬉しい事でした。エレミヤ預言者のみ言葉思い出しました。「主は言われる、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対していだいている計画はわたしが知っている。それは災を与えようというのではなく、平安を与えようとするものであり、あなたがたに将来を与え、希望を与えようとするものである。」(エレミヤ29:11)
コロナ19も同じ事です。ヨセフの兄弟たちのように恐れる対象ではありません。造り主が私たちに与えるためにいだいている計画であり、平安と将来そして希望を与えようとするシグナルであると分かって頂きたいです。なぜでしょうか?コロナ19は「終わりの時の最後」と「艱難」が間近くなっているという「シグナル」だからです。これは、時が近づいている事であり、その時と言えば、「主イエス・キリストの再臨」の事です。輝く衣を着せられ、永遠の喜びのパーティへ招かれる事です。
主イエス様は、「時をわきまえるように」と言われました。また「目を覚ましてい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なぜでしょうか?必ず、主は来られますが、艱難を通ってからの事だからです。信仰は忍耐であり、救いは約束である事を思えて下さい。私たちが思い、想像する事とは比べる事の出来ない喜びと祝福が私たちの前にあります。最後まで信仰を守り抜けるように心から祈ります。
ルカによる福音書21章
17 また、わたしの名のゆえにすべての人に憎まれるであろう。18 しかし、あなたがたの髪の毛一すじでも失われることはない。19 あなたがたは耐え忍ぶことによって、自分の魂をかち取るであろう。
17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18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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