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9절)
9 私が信頼した親しい友が私のパンを食べている者までが私に向かってかかとを上げます。
시인 다윗은 가난하고 아프지만 “온전한 중에”(12) 있는 자들을 위해 중보합니다. 더불어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시로 보여집니다. 그 중에 9절 말씀에서 자신이 신뢰하던 가까운 친구도 자신을 대적하였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라는 표현이 눈길을 끕니다. 이렇게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대적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분명한 것은 사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을 분은 오직 주님 한 분 뿐이십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종 시험에 들기도 하고 배신으로 인해 상처를 입는 것은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믿음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사람을 너무 믿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혹시 누군가를 너무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상처를 받거나 시험을 당하기 전에 믿음의 대상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주님만을 오직 믿음의 대상으로 바꾸면 상처를 주거나 배신을 당해도 용서하게 되고 시험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전능한 하나님을 바라보며 2020년 끝에 서 있는 지금, 용서해야 할 대상은 없는지도 돌아보는 기도의 시간을 갖아봅니다.
詩人ダビデの告白です。弱っている者のために祈る詩でありますが、ダビデ自身のための祈りでもあります。特に9節において「私が信頼した親しい友が私のパンを食べている者までが私に向かってかかとをあげます」と言う表現が目に入りました。他の訳で見ると「信頼した親しい友、わたしのパンを食べた親しい友さえも/わたしにそむいてくびすをあげた。」 このように、親しい友がそむいた事とは、何のメッセージを伝えているだろうか… 確かな事は、人は信仰の対象ではないという事です。
私たちが信じられる方はただ一人、造り主だけです。人は愛の対象であり、信仰の対象で無い事でしょう。人が人に傷つかれる事の理由は、愛の対象でなく信仰の対象として受け止めていたからではないでしょうか。クリスチャンは造り主を信頼し、信仰しているために、人を愛する事ができるのです。
主を信じる事は、結局その計画を信じる事です。何があっても変わらない愛をもって私を支え、導かれる神を信じるから、一時期の問題はむしろ私を高く成長させるチャンスであり、その悩み、苦しむ時に耐えられる力を与えて下さるから忍んで成長へ至るのです。信じていた人からのそむきも、主の御心として受け入れ、赦すことができ、試みられれないのです。
2020年もわずかですが、どうでしょうか?主なる神を深く信じ、信頼して歩まれたでしょうか。赦す人はいないでしょうか。主は、信頼でき唯一な神、信仰すべき全能なる愛の神です。その御恵が皆さんの上に豊かに…
ヨハネによる福音書13章
34 わたしは、新しいいましめをあなたがたに与える、互に愛し合い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愛し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互に愛し合いなさい。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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