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하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26절)
26 私たちの家畜も私たちと一緒に行きます。ひづめ一つ残すことはできません。私たちの神、主に仕えるために、家畜の中から選ば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です。しかも、あちらに着くまでは、どれをもって主に仕えるべきか分からないのです。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가축을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가져가야 하는 이유를 밝힙니다. 가져간 가축 중에서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광야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가축과 함께 출애굽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맨몸으로 출애굽하는 것도 힘든데 하나님께 드릴 예배의 제물로 가축을 광야까지 데리고 간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즉 약속된 축복을 향한 여정엔, 출애굽도 제물을 드리기 위한 것도 모두 희생이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약속된 축복을 누리기 위해 드려지는 예배는 본질적으로 희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곧 희생입니다. 희생이 없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편리성을 추구해도 교회는 이를 따르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넓은 길이 아니라 희생의 길, 즉 좁은 길로 걷기를 원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마 7:13).
오늘의 말씀 속에서 희생이란 메시지에 함께 귀기울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로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삶의 예배자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本文は、イスラエルの子らが持っていた家畜を一匹も残さず持っ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理由を明かしています。家畜の中で主なる神様に捧げる供え物があるからという事でした。そのためには、まずエジプトから出る必要があり、荒野の旅路で家畜もすべて率いて行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簡単な事ではありません。
旧約の時代、荒野で主に捧げる礼拝には供え物が必ず必要でした。これを通して悟る事があります。礼拝には本質的に犠牲が求められている事です。犠牲なしで捧げる礼拝は主に適いません。イスラエルの子らが約束の地「カナン」へ入る前、主はご自身が喜ばれる礼拝について教えておられるのです。
現在も全く違った形式であっても「礼拝」を捧げています。しかし、時代に従い変わりつつあるもののその「礼拝の本質」は変わりません。この世が求める便利性を追求する礼拝を教会が見分ける必要があるべきです。イエス様はマタイによる福音書7章13-14節において、「狭い門からはいれ。滅びにいたる門は大きく、その道は広い。そして、そこからはいって行く者が多い。命にいたる門は狭く、その道は細い。そして、それを見いだす者が少ない」と言われました。昔の様に供え物は要りませんが、イエス様が歩まれた道を共に歩み、造り主を礼拝する私たち一人一人が「生きた、聖なる供え物として捧げる」思いを無くしてならないと言う事です。
狭い道は誰でも喜ばれない道であると思いますが、実に一番ダイナミックな道であり、全能の神に支えられる唯一な道なのです。されに主は、私たちのために十字架にて大いなる「犠牲」を払いました。それによって、私たちは主なる神に買い取られた者となったのです。すなわち、全能の神が責任をもって導かれるという事です。イエス・キリストの恵みに力強く、生きた供え物として捧げる日々を通して、新しい命による喜びが皆さんの中に満ち溢れる事を心から祈ります。
ローマ人への手紙12章
1 兄弟たちよ。そういうわけで、神のあわれみによってあなたがたに勧める。あなたがたのからだを、神に喜ばれる、生きた、聖なる供え物としてささげなさい。それが、あなたがたのなすべき霊的な礼拝である。2 あなたがたは、この世と妥協してはならない。むしろ、心を新たにすることによって、造りかえられ、何が神の御旨であるか、何が善であって、神に喜ばれ、かつ全きことであるかを、わきまえ知るべきである。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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