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11절).
11 私たち生きている者は、イエスのために絶えず死に渡されています。それはまた、イエスのいのちが私たちの死ぬべき肉体において現れるためです。
바울은 자신의 육체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죽음에 내맡긴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옛 사람이 죽어야 우리 안에 계신 예수의 생명이 역사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자가 자신을 죽음에 맡긴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부활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바울이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한 것도 그가 부활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생명과 부활 생명은 비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이란 시간의 무게는 가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것은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부활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임을 기억하는 묵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우리도 함께 못 박혀 죽었습니다.(갈2:20)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려면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부활의 영광은 육신의 죽음에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パウロは、死ぬべき肉体において「イエスの命」が現れるために、絶えず死に自分を渡されていると言われました。そうなのです、私たちはすでに「古いものは過ぎ去った、新しく造られたもの」です。(Ⅱコリント5:17)過ぎ去ったという事は、キリストと共に十字架において死んだ事を意味します。私たちは毎日この事を思う事によって、「イエスの命に輝く」者となるのです。
しかし、毎日「生きている者」が死に預かる事は決して簡単な事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可能にさせる唯一の方法と言えば、それは「復活の信仰」のみと言えるのです。パウロが「絶えず死に渡されている」と言うのは、彼が復活信仰を持っていたからです。肉の命と復活の命は比べる事のできないものです。永遠の命の重さは測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それで、信仰の先輩たちは死の選択を恐れず、殉教されたのであり、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明らかにされた復活の命、永遠の命である「イエスの命」に自分を預ける事が出来ました。
ガラテヤ書2章20節のみ言葉が思い出されます。「生きているのは、もはや、わたしではない。キリストが、わたしのうちに生きておられるのである。しかし、わたしがいま肉にあって生きているのは、わたしを愛し、わたしのためにご自身をささげられた神の御子を信じる信仰によって、生きているのである。」
今日のみ言葉を通して、明らかなメッセージは「復活の栄光は肉身の死と比例している」事です。これを知れば、恐れる事はありません。自分の古きものをイエス様が背負られた十字架に付け、常にイエスの命に輝くクリスチャンの日々を歩めるように、強く祈ります。
コリント人への第2の手紙5章
17 だれでもキリストにあるならば、その人は新しく造られた者である。古いものは過ぎ去った、見よ、すべてが新しくなったのである。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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