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20절).
20 こういうわけで、神が私たちを通して勧めておられるのですから、私たちはキリストに代わる使節なのです。私たちはキリストに代わって願います。神と和解させていただきなさい。
바울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말이 크게 와닿습니다.
이미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했을까? 고민하다가 깨닫는 것은, 신분상으로는 화목하게 되었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적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내부적인 분열이 있고, 오해로 인한 인신공격이 심했습니다. 고린도후서라는 편지 자체가 이런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이 보낸 서신이기도 합니다. 즉 바울이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하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믿기 전처럼 죄 가운데서 살지 말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위해 서로 사랑하라는 부탁이기도 한 것입니다.
성도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면, 주변 성도들과도 화목하게 되는 은총을 약속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실제로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죄에서 떠나야 하고, 인내와 절제를 가진, 꾸준한 믿음의 삶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내 안에서 하나님과의 화목을 파괴하는 ‘작은 여우’를 찾아내서 제거해하고(아가2:15), 내가 지금 하나님과 화목한지를 돌아보는 오늘의 묵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パウロは、キリストに代わる使節としてコリント教会の聖徒らに「神と和解」するように願いの言葉を告げました。
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聖徒はすでに神と和解を得ている者です。ところが、なぜパウロはコリント教会の聖徒らに「神と和解」するように願ったのか…、それは、彼らは身分の上では神と和解を得たクリスチャンのように見えますが、実際にはキリストを信じる前と変わらない生活をしていたからでした。
神と和解を得る事はもっと重要なクリスチャンの恵みであります。しかし、この恵みを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得られたとすれば、その和解の関係を維持するための信仰生活が伴ってくるのです。言い換えればクリスチャンとしての責任、責務という物があるという事です。どのような責任かと言うと、聖書ペテロの第Ⅰの手紙2章9節を見ると「あなたがたは、選ばれた種族、祭司の国、聖なる国民、神につける民である。それによって、暗やみから驚くべきみ光に招き入れて下さったかたのみわざを、あなたがたが語り伝えるためである。」と言われました。すなわち「暗やみから驚くべきみ光に招き入れて下さったかたの御業を」語り伝える、という事です。ヤコブの手紙2章22節では、「あなたが知っているとおり、彼においては、信仰が行いと共に働き、その行いによって信仰が全うされ」ると言われました。整理すると、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信仰によって神と和解を得た者は、この福音を(良い知らせ)語り伝える者であり、そのために良い行いによって信仰が全うされるという事でした。結局、神と和解された者は、人々の関係においても和解を得る者となるのです。
コリント教会の聖徒たちは、信仰をもっているものの、生活の面においては以前と変わりのない、この世に属する行いをしていました。コリント教会には言い争いが多く、喧嘩もあった事です。それでパウロは、再び「神と和解」をしなさい。その関係を改めて正しく改善するように、願い言葉を書き記したのです。
神と和解を得るためには、必ず、「罪の悔い改めと罪から離れる」事を実践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だから、信仰には「忍耐と節制」が必要なものですが、主が助けて下さるのです。まず、自分の中にある、神と和解を妨げるものを見つけ、除去しましょう。神との和解をもう一度振り返ってみる今日の黙想となれるように祈ります。
ヤコブの手紙4章
8 神に近づきなさい。そうすれば、神はあなたがたに近づいて下さるであろう。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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