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22절).
22 急いで私を助けてください。主よ私の救いよ。
시인은 속히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속히”라는 표현 속에, 시인이 얼마나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는 것과 믿음은 비례합니다. 그래서 상황이 어려울 때만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는 것은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늘 그 구원을 바라고 구하는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 대한 구원(인도),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구원(보호), 미래에 대한 영혼 구원은 날마다 바라는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믿음이 있어야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갈망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기도할 문제가 산적해 있어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는 이유는, 지금을 믿음으로 살고 있지 못해서 보이는 당연한 현상일 뿐입니다. 마지막의 때 그 끝을 살고 있는 지금, 날마다 전심으로 주를 찾고, 구원을 갈망하는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심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詩人は、「急いで私を助けて下さい。」と切に願っています。「急いで」という表現から詩人の緊急さが感じられます。
造り主の救いを願う事と信仰は比例しています。それで、緊急の時だけ、神の救いを願い事は決して健康的な信仰とは言えません。信仰ある者は、常にそのみ救いを望み、願うものだからです。日々の歩みの中で求むべき救いがあります。それを「導き」と言います。愛する者のために願う救いがあります。それは「守り」と言えます。そして未来のための願う救いがありますが、それを「永遠への待ち望む」もしくは「希望」と表現できます。要するに、み救いを願う事は信仰ある者にとって日々求むべき祈りである事です。
イエス様はこの様に言われました。ルカによる福音書18章「8.… 人の子が来るとき、地上に信仰が見られるであろうか」。祈りの課題が山ほど沢山あっても造り主を探し求めない理由は、日々主の助け、救いを求める信仰になってないからでしょう。世の終わりの時にはより大きな苦しみがあると言われています。その時、「急いで私を助けて下さい。主よ私の救いよ。」と言えるために、信仰によって生きる者となるべきです。健康な信仰を持つ者が状況に関わらずみ救いを願い、常に主を待ち望むのです。
ヘブル人への手紙7章
24 しかし彼(イエス)は、永遠にいますかたであるので、変らない祭司の務を持ちつづけておられるのである。25 そこでまた、彼は、いつも生きていて彼らのためにとりなしておられるので、彼によって神に来る人々を、いつも救う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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