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2水 今日の黙想 歴代誌下24:17-27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18절).
18 彼らは父祖の神、主の宮を捨て、アシェラと偶像に仕えた。彼らのこの罪過のゆえに、御怒りがユダとエルサレムの上に下った。
본문은 요아스 왕이 여호와를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요아스가 어떤 왕이었습니까?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여 무너졌던 여호와 신앙을 일으켰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돌변한 이유가 있습니다. 17절을 보면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 방백들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아스가 방백들의 간청을 받아들이고 여호와의 전을 버린 것을 통해서 마음에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은, 주의 말씀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또 내 스스로 계속 채우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을 받을 경우 믿음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도 그렇고 목회자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마귀의 공격에도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려면 믿음의 항상성을 항상 유지할 수 있는 자기 헌신과 관계가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자만하거나 세상일과 자기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하면 안됩니다. 신앙은 훈련입니다. 경건의 습관화를 이루기 위해 내 안과 밖에 있는 것을 투자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주의 은혜가 항상 우리 위에 머물도록 힘쓰고 바라고 인내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本文は、「ヨアシュ王」が造り「主を捨て、アシェラと偶像に仕えた」ので、「彼らのこの罪過のゆえに、み怒りがユダとエルサレムの上に下った」と言われました。しかし、ヨアシュ王は主の宮である神殿を立て直し、信仰のリバイバルを成し遂げた王であったのです。
なぜ、王は主を捨て、偶像崇拝に落ちたでしょうか?それは、17節を見ると「エホヤダの死後、ユダの首長たちが来て、王を伏し拝んだ。それで、王は彼らの言うことを聞き入れた。」からでした。
祭司長エホヤダが死んだ後、ユダの首長たちはアシュラ像と偶像崇拝に取り入れ、政治的な目的で用いる事を申し入れた事です。造り主への恐れが全くありません。そして、ヨアシュ王も王として信仰の多様性をとおして王権を強めたかった事でしょう。妥協してはならないものの、エホヤダのような存在を失った事で、信仰の目ではなく、人間の視点から見るようになり、主なる神様を捨てたのです。クリスチャン達にもっとも恐れるべき現実主義です。
ヨアシュ王を通して悟るがあります。それは、信仰は人を頼ってはならない事です。牧師や信仰の先輩に導かれる事は大事ですが、自分が自ら主のみ言葉に触れられ、祈りをとおして主なる神様を経験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また、人の目ではなく、主なる神様を頼る者となるべきです。信仰の成長と守るため、常に主との関係を一人よらず、自ら築くことが大事です。
ヨアシュ王は、神との関係を人に頼りすぎました。結局、時になって妥協し、南ユダ王国を堕落させたのです。これが、サタンの絶えず攻める策略です。
自分の信仰の成長のために、少しでも時間を主にささげる訓練をしましょう。区別された場所で祈る時間をちゃんと持ちましょう。「備えあれば患いなし」です。主は、私たちが頼れる唯一なお方です。 
第1ペテロの手紙1章
13 それだから、心の腰に帯を締め、身を慎み、イエス・キリストの現れる時に与えられる恵みを、いささかも疑わずに待ち望んでいなさい。14 従順な子供として、無知であった時代の欲情に従わず、15 むしろ、あなたがたを召して下さった聖なるかたにならって、あなたがた自身も、あらゆる行いにおいて聖なる者となりなさい。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大阪ホーリネス教会

大阪ホーリネス教会は聖書の教えと生き方が釣り合う共同体を目指していく教会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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