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32절)
32 だが、おまえの弟は死んでいたのに生き返り、いなくなっていたのに見つかったのだから、喜び祝うのは当然ではないか。
본문은 아버지가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푼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분노하는 첫째 아들에게 한 말입니다. 한마디로 아들을 잃었다가 얻었고, 동생이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라는 단어가 가슴에 크게 와닿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우리는 ‘아버지와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입니다. 아들과 동생이 돌아왔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기뻐해야 하는데 그중에서 유독 첫째 아들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첫째 아들의 관심사가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즉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아들에 관심을 가졌지만, 첫째 아들은 동생보다 자신에게 돌아올 재물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이 우리의 관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말씀을 통해 또한 번 깊이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듯이 우리도 이것을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무엇때문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오늘 묵상을 통해 잃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결단하는 묵상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
今日の本文は有名な「放蕩息子」の話しです。最後の32節は、父がすべての財産を失って帰って来た次男のために「肥えた子牛を引いて来て屠り、祝宴」を設けた事を聞いた長男に対して言われた言葉です。一言で、死んでいたのに生き返り、いなくなっていたのに見つかった次男だから、「喜び祝うのは当然」だという事です。
しかし、長男は喜びませんでした。その理由は、父と長男の関心が違ったからです。父は父の財産の半分を持って家出をした次男に関心があり、息子が生きて帰った事に喜びました。ところが、長男は生きて帰って来た弟より自分の分、すなわち父の残りの財産に関心があったからでした。
父なる神様のみこころが現わされているたとえ話しです。
父なる神様は失った一人のたましいに関心があり、それを喜ばれる事は聖書を通して何度も悟るものでした。私たちもこれを喜び、父なる神様のために持つべき志をもう一度思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います。本当に私は何を喜んで、何を楽しんでいるのか…共に思いながら、失った多くのたましいのために祈る黙想であるように心から祈ります。
ルカによる福音書15章
20 こうして彼は立ち上がって、自分の父のもとへ向かった。ところが、まだ家までは遠かったのに、父親は彼を見つけて、かわいそうに思い、駆け寄って彼の首を抱き、口づけした。
20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ヨハネの第Ⅰの手紙4章
16 わたしたちは、神がわたしたちに対して持っておられる愛を知り、かつ信じている。神は愛である。愛のうちにいる者は、神におり、神も彼にいます。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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