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24-25절)
24 それでピラトは、彼らの要求どおりにすることに決めた。 25 すなわち、暴動と人殺しのかどで牢に入れられていた男を願いどおりに釈放し、他方イエスを彼らに引き渡して好きなようにさせた。
본문은 빌라도가 무리의 요청대로 민란과 살인으로 옥에 갇힌 죄수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언도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에’는 무리들의 끈질긴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시도록 내어준 것은 무리의 끈질긴 요구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무리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예수께서 입성하실 때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토록 끈질기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요구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께서 메시아인 줄 알았는데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에 의해 세뇌당하고 예수께서 힘없이 체포당하는 모습을 보자 그가 ‘메시아’가 아니라 ‘거짓 메시아’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백성들의 끈질긴 요구에 빌라도는 예수를 포기합니다.
여기서 많은 무리들의 끈질긴 요구를 보면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끈질김 자체는 미덕이지만 그 기초가 말씀이냐 아니면 잘못된 생각이냐에 따라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이 누구의 영향을 받아서 이든 스스로의 생각이든 결과는 죄가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만들었습니다. 즉 개개인의 잘못된 언행과 선택의 결과는 같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자신 생각의 끈질김은 고집과 아집을 낳습니다. 무고한 생명에 해를 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인한 끈질김은 순종을 낳고, 수많은 생명을 살립니다.
내 자신의 감정과 사람의 말에 의한 고집이 아닌, 하나님의 사신 말씀에 따라 굴하지 않는 거룩한 고집으로 주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복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本文は、ピラト総督が民衆のしつこい叫び求めによって、暴動を起こし、人を殺した「バラバ」を解放し、イエス様は「彼らに引き渡して好きなようにさせた」と記録しています。24節の「それで」というのは、群衆らのしつこい叫び求めの事による結果を意味します。
「願い続ける事」は大事です。今日の本文でも結局のところで、ピラトがイエスを十字架へ渡した事になったのも群衆らが「願い続けた」故の事でした。
問題は、何のためにしつこく願い続けるのかです。間違った考えや自分の欲によるしつこいは固執であり、害をもたらしますが、主なる神のみ言葉による祈り続ける事や従順は、むしろ多くの命を助け、人に幸福をもたらすのです。
今日のみ言葉を通して、自分の感情、知識の固執を捨て、生ける主なる神のみ言葉に従うための固執をもって、真に幸せな者となれるように心から祈ります。
ルカによる福音書18章
「1イエスは失望せずに常に祈るべきことを、人々に譬えで教えられた。 2 『ある町に、神を恐れず、人を人とも思わぬ裁判官がいた。3 ところが、その同じ町にひとりのやもめがいて、彼のもとにたびたびきて、『どうぞ、わたしを訴える者をさばいて、わたしを守ってください』と願いつづけた。4 彼はしばらくの間きき入れないでいたが、そののち、心のうちで考えた、『わたしは神をも恐れず、人を人とも思わないが、5 このやもめがわたしに面倒をかけるから、彼女のためになる裁判をしてやろう。そしたら、絶えずやってきてわたしを悩ますことがなくなるだろう』
6 そこで主は言われた、『この不義な裁判官の言っていることを聞いたか。7 まして神は、日夜叫び求める選民のために、正しいさばきをしてくださらずに長い間そのままにしておかれることがあろうか』」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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