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11-12절).
11 わが子よ、主の懲らしめを拒むな。その叱責を嫌うな。 12 父がいとしい子を叱るように、主は愛する者を叱る。
본문은 여호와께서 징계하시고, 꾸짖는 이유가 사랑하시기 때문임을 알고 이를 경히 여기거나 싫어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이 크게 와닿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나 징계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에선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을 꾸짖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지혜의 말씀을 통해 징계하시고, 꾸짖어 강건케 하십니다.
징계와 심판은 전혀 다릅니다. 징계는 교육이고 심판은 형벌입니다. 그런데 이 징계나 심판이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쉽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지혜(하나님 경외)와 근신(계명=기준)”(21)으로 징계를 심판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징계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바른길로 나가야 심판이 아닌, 영혼의 생명을 얻고 목에 장식(영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코로나19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어떤 메시지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겐 하나님이 주시는 분명한 시그널(징계와 꾸지람의 도구)이 되고 있어야 합니다. 아직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심판”을 분별해 내는 도구로가 될 수 있도록, 코로나19가 아닌 징계와 꾸지람의 말씀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本文は、私たちに対する「主の懲らしめ」と「叱責」は「父が愛しい子を𠮟るように、主は愛する者を叱る」事だから、「拒んだり、嫌ったり」してはいけないと言われました。すなわち、主なる神は、誰でも懲らしめ、叱られる方ではないと言う事です。
この世では、上下関係において、叱る側の利益や便利のゆえに懲らしめたり、叱ったりする傾向が強いですが、主なる神様はご自分の愛する者のために知恵あるみ言葉を通して導かれるのです。
懲らしめる事と裁きは背反対の意味を持っています。懲らしめる事は「教育」のためであり、「裁き」は「刑罰」のためなのです。問題は、どちらにも精神的であれ、肉的であれ、苦痛な時が存在するので、区別が難しいです。それで、21節以下にこのように書き記されています。「わが子よ、見失ってはならない。知性と思慮をよく見守れ。それらは、たましいのいのちとなり、あなたの首に麗しさを添える」
すなわち、知性(確かな知恵=主を恐れる)と思慮(基準となるみ言葉)をもって、主の懲らしめると、罪のゆえの「裁き」をわきま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区別出来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事です。区別が出来れば、主なる神様の愛を知り、「魂の命」と「栄光」を受けられるのです。
時には懲らしめられるような事があっても、叱られても、主の愛の杖に自分の罪を見つめ合って、悔い改めれば、主はより強く私を立たせ、確かな道へ導かれるのです。主の知恵あるみ言葉を通して、主の愛に注がれる日々を心から願い祈ります。
ローマ人への手紙8章
38 わたしは確信する。死も生も、天使も支配者も、現在のものも将来のものも、力あるものも、39 高いものも深いものも、その他どんな被造物も、わたしたちの主キリスト・イエスにおける神の愛から、わたしたちを引き離すことはできないのである。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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