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19절)
19 反抗する兄弟は堅固な城よりも近寄りにくい。争いは宮殿のかんぬきのようだ。
본문은 사람을 노엽게 하면 마음을 닫아버리므로 그와 화목하는 것은 마치 견고한 성을 취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노엽게 한 친척과 까까원지기는 견고한 성을 함락시키는 것보다 어려우니, 그 다툼은 마치 꺾이지 않는 성문의 빗장과 같다” 또 현대인 성경은 “기분을 상하게 한 형제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은 요새화된 성을 빼앗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이와 같이 한번 다투게 되면 마음을 철문처럼 닫아버리기가 일쑤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의 다른 성경번역을 같이 나열한 이유가 있습니다. “형제”, “친척” 이라고 한 아주 가까운 대상과 관계가 망가지면 회복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강한 설득력을 공유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주님의 몸을 이루는 1촌 이상의 관계성을 가진 곳입니다. 그래서 “형제, 자매”라고 부르고, 어느 교회에선 목사도 장로도 권사라는 칭호도 없이, 오직 형제 자매라 고만 부르는 곳도 있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그런 공동체 안에서 깨어진 관계가 생기게 될 때, 다시 회복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해결 아닌 해결을 갖게 됩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도 어렵지만 한 번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지금의 관계를 소중하게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좀더 자신을 먼저 돌아보며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우리 교회 공동체가 되도록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20-21절에 기록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난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사려 깊지 않은 언행으로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아는가? 돌아보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또한 자신도 상처를 입지 않도록 주의하고자 하는 묵상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혹 상처를 받아 관계가 깨어졌다면 마귀가 배후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인지하여 주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목하기 위해 힘써는 기도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本文は、「反抗する兄弟は堅固な城よりも近寄りにくい」と言われています。要するに兄弟との「争い」、「喧嘩」などによって壊れた関係は回復されにくいという事です。
ハングルではちょっと長く書きましたが、一言で言うと、平和をつくる者がクリスチャンであり、互いの良い関係を守るために、言動を慎んで傷つけない、傷つけられないようにしましょう。という事を分かち合いました。
何より、今、誰かに傷つけられた事があれば、今日のみ言葉は回復の厳しさを言っているが、赦しの祈りと心を求める時を持ってほしいです。結局、関係を壊す事はサタンの策略であるので、イエスの名によって愛の心、赦す心を願う事が勝利の道だからです。
主イエス様は、十字架の上ですべての人の罪を赦し、平和を祈りました。私たちが一生をかけて成し遂げるべき事も同じなのです。造り主の愛とイエス・キリストの恵みにすべての痛みが癒され、赦す力を頂けるように心から祈ります。
マタイによる福音書5章
9 平和をつくり出す人たちは、さいわいである、彼らは神の子と呼ばれるであろう。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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