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22절).
22 ダビデは言った。「あの子がまだ生きているときに私が断食をして泣いたのは、もしかすると主が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り、あの子が生きるかもしれない、と思ったからだ。
본문은 다윗이 아이가 살았 있을 때 금식하고 운 것은 하나님께서 혹시 자신을 불쌍히 여기셔서 아이를 살려 주시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이미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밧세바를 통하여 낳은 아들이 반드시 죽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이리이다”(삼하 12:14).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기에 우리 같았으면 즉시 포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렇게 금식하며 밤새도록 울며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이를 정말 믿는다면 결과를 주님께 맡기고 다윗처럼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함을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그래야 나의 태만으로 인한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더욱 더 선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과정과 끝저리엔 반드시 여디디야(솔로몬의 다른 이름: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의 위로과 축복을 얻을 수 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며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本文は、ダビデがパテシバ(11:3)を通して得た「子」が、生きていた時、「断食しながら終夜地に伏して祈った事」の理由について語っています。「もしかすると主が私をあわれんで下さって」あの子を癒して下さるかもしれない、「と思ったから」でした。
ダビデはすでにナタン預言者を通して告げられていました。「しかしあなたはこの行いによって大いに主を侮ったので、あなたに生れる子供はかならず死ぬでしょう」(12:14)と。すなわち主なる神様は「必ず死ぬ」と言われていた事に対して、あきらめる事無く祈った事でした。主の定めのような事に対し、ダビデが祈った事は、不信仰でも、反抗でも、固執でもありません。
ダビデ自身がその理由を明かしたように主は哀れみ深く愛に満ちた神である事を信じていたから、自分が犯した罪のゆえ断食と悔い改める心をもって願い求める祈りでありました。
造り主は私たちを哀れまれます。これを信じる者は結果を主に委ねて最後まで求め続けます。万が一自分の過ちによる出来事であっても同じく主の哀れみを祈り求める重要性を知ってもらいたいと思います。なぜならば、哀れんで下さる神である事を信じて祈る時に新しい主による道、希望の光が注がれるからです。それによって、主がどのような方なのかを知るでしょう。まるで、ダビデがささげたこの信仰による祈りが、イスラエルの歴史上最高の富を築き、初めの神殿を完成させた「ソロモン王」誕生へ繋いだことのように、主は聞かれ、慰め、新しい希望の道を開いて下さる神である事を知るのです。
主の定めによって死んだ初めの子の事を思えば、多少すっきりしないかも知れません。しかし、ダビデは知っていました。死ぬことは生きる人にとっては非常につらい事ですが、永遠の別れではない事を(23)…。という事で「バテシバを慰めた」ダビデであり、主なる神は「エデデア(主はこれを愛された)」と呼ばれる「ソロモン」を授けて下さったのです。
主は哀れみと愛に満ちた創造主です。どのような状況においても主に近づき、祈り求めて主の御心に適う者であるように心から祈ります。
ピリピ人への手紙4章
6 何事も思い煩ってはならない。ただ、事ごとに、感謝をもって祈と願いとをささげ、あなたがたの求めるところを神に申し上げるがよい。7 そうすれば、人知ではとうてい測り知ることのできない神の平安が、あなたがたの心と思いとを、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守るであろう。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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