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9절)
その日、人は言う。「見よ。この方こそ、待ち望んでいた私たちの神。私たちを救ってくださる。この方こそ、私たちが待ち望んでいた主。その御救いを楽しみ喜ぼう。」イザヤ書 25章9節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는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와 ‘우리를 구원하신다’가 각각 두 번이나 등장하는 것을 봅니다. 분명한 메세지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로운 깨달음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과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조금은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 임재 자체를 기다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인내자에게 베푸시는 구원을 기다리는 것으로 구분이 된다는 깨달음입니다. 만약 내게 해결 받아야 할 문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문제를 해결 받아도 평생 하나님을 잊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길 잃은 아이가 부모를 만나는 것 같기 때문이라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얻는 은혜가 큽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주님이 곁에 계시면 평안하고, 안전하기에 먼저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날마다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끝까지 사명 감당하며 구원을 기다리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힘있게 믿음의 여정을 걸으시는 모두를 축복하며…
本文は、主なる神様の救いを待ち望んだら、「私たちを救ってくださる」と言われました。
本文をよく読んでみると、待ち望む理由は「救い」だけでは無く、「この方」である、主なる神様の「臨在」を共に待ち望む事が分かります。すなわち、私たちは主なる神様を待ち望むべきですが、それは「救い」だけでは無いという事です。神ご自身を待ち望む事の大切さを教えているのです。
「救いを与える方」は、造り主の神様のみです。からと言って、御手にある「救い」だけを待ち望む事は熟成された信仰とは言えません。その「救い」を与えて下さる造り主の神、「この方」を見るのがもっと成熟された信仰では無いでしょうか。だから、私たちは「救ってください」、「助けて下さい」という祈りももちろん重要でありますが、「主は共におられる」というインマヌエルの恵みを常に、待ち望み、求める事がより重要であり、私たちと交わる事を願われる主なる神様が一番喜ばれる事だと思います。自分の子がパパの手にある良い物のために、求める事は悪くありませんが、パパがそばにいて欲しがる気持ちをほどうれしい事はありません。すべてをあげても惜しい事は無いでしょう。
主なる神様を待ち望みましょう。その救いを、その助けを待ち望みましょう。しかし、主なる神様が好きで、愛するゆえに、主の臨在を、神ご自身をより待ち望む私たちとなりましょう。
ダニエル書3章
16 シャデラク、メシャクおよびアベデネゴは王に答えて言った、「ネブカデネザルよ、この事について、お答えする必要はありません。17 もしそんなことになれば、わたしたちの仕えている神は、その火の燃える炉から、わたしたちを救い出すことができます。また王よ、あなたの手から、わたしたちを救い出されます。18 たといそうでなくても、王よ、ご承知ください。わたしたちはあなたの神々に仕えず、またあなたの立てた金の像を拝みません」。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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